사마천의 ≪사기(史記)≫의 <자객열전(刺客列傳)>에 나오는 ‘예양(豫讓)’이라는 인물은 의리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한 말들 중에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士 爲知己者 死, 女 爲說己者 容 (사 위지기자 사, 여 위열기자 용)”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단장을 한다.”
중국 춘추시대 말기 진(晋)나라가 삼국(위魏, 조趙, 한韓)으로 분리되는 와중에 예양(豫讓)이라는 사람이 지백(智伯)의 수하에서 대접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백이 조(趙)의 양자(襄子)에게 패하여 죽음을 당하고, 그의 해골이 요강으로까지 만들어지자 예양은 산 속으로 도망쳐 주군을 위해 복수의 기회만을 기다렸습니다. 이 때 복수심을 다지면서 예양이 한 말이 바로 이 격언입니다.
복수를 위해 예양(豫讓)은 죄인으로 가장했다가 실패하고, 나병환자로까지 가장해서 양자(襄子)를 죽이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자 스스로 자결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이‘예양’이라는 인물을 생각할 때마다 ‘그가 만약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만큼이나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목숨을 다하며 헌신했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한편, ‘인간관계 속에도 이렇듯 의리와 충성이 있는데 우리는 어찌 하나님의 아들, 우리의 주군이 되시고자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친히 내려와 우리의 모든 죄를 져주신 예수님께 이 정도의 의리도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언제부터 교회의 모임이나 행사는 자신의 삶을 구속하고 귀찮게 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고 정작 자신의 현재 영적인 상태를 보지 못하는 영적 소경이 되어버린 오늘 날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들, 교회의 리더가 잘못해온 것으로 인해 실망하고, ‘교회는 그저 일요일날 예배만 드릴 때 가는 곳’ 정도로만 생각하고 성경 말씀 한 구절도 주중에 보지 않는 사람들. 그래도 예수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은 은혜가 되지만 한편 변명의 여지도 없을 장차 있을 심판을 생각하면 오히려 두렵기만 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립보서 2:12)
두렵고 떨림으로 이 땅을 사는 이들은 심판대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떨릴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 반대가 된다면...?
그래서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저에게 물으실 책임이 너무 두려워서, 적어도 제가 목양하고 훈련시킨 분들은 저와 같이 주님을 뵈어야 하기에 신앙의 기초부터 다시 시작 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