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자인 한 잡지의 편집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의 복음은 우리 막스주의자들의 사상보다 훨씬 더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러나 종국에는 우리가 당신들을 이기고 말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말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실천자들이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결단이 분명하고, 어떤 희생과 대가지불도 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말만 그럴 듯하게 합니다. 복음에 대한 헌신도 없고, 전파하지도 않고, 시간과 물질도 희생하지 않으면서 복음을 믿으라고 한다면 그것을 누가 믿겠습니까?"
이는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행태를 꼬집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이부형제(異父兄弟)인 야고보 사도 역시 이와 비슷한 말을 남겼습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 2:19).
믿음은 반드시 ‘결단’을 요구합니다. 믿음은 마치 비행기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이 지금 뉴욕행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에 갔다고 가정해 봅시다. 뉴욕행 티켓을 끊었다고 당신이 뉴욕에 당장 도착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반드시 뉴욕행 비행기를 타야 당신은 뉴욕에 도착합니다. 당신이 뉴욕행 비행기를 타는 것이 바로 ‘결단’입니다. 티켓만 살 뿐 비행기를 타지 않고, 뉴욕에 도착할 것이라 여기는 것은 바로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행동을 옮기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가 하는 믿음의 고백은 비행기 티켓을 사는 행위이고 실천하는 것은 바로 비행기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성경의 모든 진리들은 행동으로 표현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한 율법사가 다음과 같이 구원에 대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눅 10:25).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예수님은 그가 직접 깨닫도록 하시고자 대답대신 질문을 하셨습니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그러자 그 율법사는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결론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대답이 맞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구원을 받으리라]” 이에 그 사람이 자기의 의로운 행위들을 자랑하려 하자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비유에서도 동일한 결론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즉, 많이 안다고 자랑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옮겨야 함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은 결단이고 실천입니다.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믿음은 귀신들이 가지고 있는 수준의 믿음일 뿐입니다. 삶 가운데 변화가 없고 어제보다 오늘을 더욱 거룩하게 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단지 우리의 착각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