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어느덧 1월이 다 지나갑니다. 이렇게 2월이 가고, 3월이 갈 것입니다. 정말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뼛속까지 사무칩니다.
2019년을 시작하며‘12명의 신실한 동역자만 주시면 런던시를 변화시키겠습니다!’던 스펄전의 기도를 우리 교회의 기도제목으로 내어 놓습니다. 비록 우리의 시작은 미약하지만 1월도 채 보내지 않은 이 시점에서 앞으로 우리 교회가 말씀의 기초 위에서 단단히 세워져 갈 때,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이 한 해 동안 그분의 도구로 사용하실지 기대해 봅니다.
호사유피(虎死留皮) 인사유명(人死留名)이라는 한자성어가 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이 말을 기억할 때마다‘세상에서 이름을 남긴들 과연 하나님께 그게 얼마나 중요할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너는 세상에서 뭐하다 왔느냐?’라고 묻기 보다는 ‘너는 세상에서 내 아들 그리스도 예수의 나라와 내 아들의 피값으로 산 교회를 위해서 무엇하다 왔느냐?’라고 물으실 게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이름을 남기기보다는 천국에 이름을 남기는 이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오명을 남기기보다는 세상 사람들에게 선한 이미지를 남겨야 합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예수님의 이부형제(異父兄弟)인 야고보 사도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에는 형이었던 예수님을 미친 사람 취급하였습니다(막 3:21). 그러나 부활하신 형을 만나고 나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는 물론 자신을 ‘예수님의 종’이라고까지 고백했습니다(약 1:1). 변화된 야고보 사도는 남은 생애 동안에 삶의 가치를 그리스도인으로써 올바른 행동과 세상에서 모범이 되는 삶에 두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은 그의 삶의 가치가 바뀌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참된 것,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예수님 안에서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잠간 여행 온 이 땅에서 그렇지 않아도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이렇게 영적으로 별 의미 없게 보내시기보다는 앞으로 돌아갈 저 영원한 나라에서 얻게 될 상급을 기대하며 열심히 주님의 몸된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데 참여하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아니면 그저 남들처럼 똑같이 살다가 ‘예배만 드려 주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이 기뻐하실거야’라고 철썩 같이 믿고, 그렇게 이 땅에 좀 더 있다가 하나님 앞에 서실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