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세 가지 놀라운 일을 보게 되겠지... 첫째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 둘째로 기대했던 사람이 그곳에 없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로 내 자신이 그 곳에 있다는 사실.”
이는 죽기 전에 존 뉴턴이 한 말입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믿음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존 뉴턴은 1725년에 영국에서 태어나 7살 때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10살에 학교 공부를 그만두고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뱃사람이 되어 온갖 악행을 일삼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아프리카에 가서 사람들을 잡아다가 미국에 노예로 팔아넘기는 일이었습니다. 때로는 노예를 배에 싣고 오다가 산 사람을 상어의 먹이로 내어주는 악마적인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악하게 살던 뉴톤에게 하나님의 적극적인 간섭이 있었습니다. 1748년 3월 10일 대서양을 항해하던 존 뉴턴에게 큰 폭풍우가 휘몰아쳤습니다. 배가 파선의 위험에 처하자 뉴톤은 항상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성경책을 꺼내들고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드렸다. "내 어머니의 하나님이시여, 저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여 주시고 저에게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남은 생을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그 순간 그 무섭던 파도가 잠잠해졌습니다. 그 사건을 통해 뉴턴은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고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위대한 복음전도자, 신학자, 찬송가 작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늘 속죄의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모든 삶을 그리스도께 헌신하며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지은 것 찬송들 중에 지금도 깊은 감동을 주는 곡이 바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찬송입니다.
존 뉴턴은 1758년 영국 성공회 사제로 안수 받아 평신도 설교자로 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1779년부터 1807년까지 St. Mary Woolnoth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무력하고 상처입은 수천 명의 피가 영국을 향해 울고 있다"고 외치며 정치가인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를 설득하여 영국 의회에서 노예 제도 폐지를 위해서 싸워줄 것을 계속해서 요청했습니다. 그가 8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교회는 교회 마당에 있는 그의 묘비에 이렇게 새겨놓았습니다.
"한 때는 이교도였으며, 탕아였고 아프리카 노예상이었던 존 뉴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하신 은혜로 되살아났고 소생케 되었으며 그가 없애려고 애쓰던 그 복음을 위해서 전파자의 사명을 받아 근 16년간을 버킹검에서 28년간을 St. Mary Woolnoth 교회에서 사역했다."
“John Newton Clerk once an infidel and libertine a servant of slaves in Africa was by the rich mercy of our Lord and Saviour Jesus Christ preserved, restored. Pardoned and appointed to preach the faith. He had long laboured to destroy hear 16 years as Curate of the parish and 28 years as rector of St. Mary Woolnoth.”